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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절에 남아 있는 성보문화재는 대부분 근래의 것들이다. 특히 극락전을 비롯한 전각 전부와 그 안의 불상(佛像) 불화(佛畵)에 모두 최근작들만 남아 있어 절에서 전하는 496년(소지왕 2) 극달(極達)스님의 창건설을 무색케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남아 있는 전각과 당우, 불상, 불화 등으로는 천년 고찰(古刹)의 분위기를 느끼기 어렵다.

하지만 옛 터야 어디 가지 않는 법. 눈을 조금만 낮추어 보면 이 곳이 그 옛날 신라의 옛 가람터임을 알아보는 데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우선 선정루(禪定樓)아래 계단을 지나 막 절 경내로 들어오면서 오른쪽을 보면 예전 이 곳 부처님이 앉아 있었던 석조 대좌(臺座)가 땅 위에 놓여진 것이 눈에 띈다. 팔각 하대석 위에 방형의 좌대가 있는 이 대좌에는 안상(眼象) 조각이 있어 한 눈에 통일신라시대 부처님이 앉던 대좌임을 알아 볼 수 있다.

또 극락전 계단 양쪽으로 기둥처럼 세워진 석조물도 한 번 찬찬히 살펴보면 곧 신라시대 석등(石燈) 좌대 위에 그렇게 세운 것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오른쪽 좌대는 영남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형식의 신라시대 석등 좌대이기도 하다.

불대좌(佛臺座)나 석등 대좌 모두 옛날의 제모습이 아니고 부서진 채 놓여 있지만 예전 신라 때의 모습을 상상케 해주는 단초(端初) 역할은 충분히 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극락전 등이 자리한 지금의 경내를 조금 벗어난 곳, 예컨대 극락전 뒤편이나 요사 왼쪽 밭둑을 거닐어 보면 무수한 와편(瓦片)속에 심심찮게 신라시대 와편도 눈에 띄고 있다.
게다가 극락전 뒤편 경사(傾斜)가 그다지 심하지 않은 언덕에는 상당히 오래 전에 조성된 듯한 석축(石築)더미가 무너진 채 남아 있어 역시 옛날의 자취를 말없이 전하고 있다.

이렇게 일부 남아 있는 석물(石物)과 유적으로 보아도 통일신라 무렵 이 곳에 세워졌던 고사(古寺)를 확인하는 데 별 어려움은 없다. 다만 앞서 말한 석조물의 제작 연대가 통일신라 시대라서 이것만 가지고는 이 절의 5세기 창건설을 곧바로 뒷받침하지는못하고, 또 창건 당시의 절 이름이 지금과 같은 선본사였는가도 확증하지 못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아무튼 창건 이후 천 여년이 흐르는 동안 절은 성쇠를 거듭하였으므로 남아 있는 유물이 드문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고, 현재 있는 성보문화재를 살핌으로써 아쉬움을 달래 본다.

절의 전각으로는 금당인 극락전을 비롯, 좌우로 선방및 요사 각 1동과 극락전 오른쪽에 산신각이 있다. 또 절은 경내가 축대 위에 자리잡고 있으므로 절 앞쪽에 선정루를 세워 범종각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통한 주요 입구로 이용하고 있다.
그 밖에 기와 건물은 아니지만 선방과 요사 옆으로 각각 자그마한 시멘트 건물을 지어 놓았는데 창고 및 처사 거처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한편 갓바위 부처님이 있는 관봉 아래에도 칠성각.산신각.용왕각을 비롯하여 요사 몇 채가 있다. 이 전각들은 주로 갓바위 부처님 봉안을 위해 세워진 것인데 절에서는 말하기 편하고 듣기 쉬우라고 흔히 밑에 있는 선본사를 '본절', 이곳을 '웃절'로 부른다. 웃절은 갓바위 부처님을 찾는 신도가 많은 탓으로 규모가 대단하다. 요사만 하더라도 식당으로 쓰이는 삼층 건물을 포함해서 전부 6동, 그리고 기타 건물도 6동이나 되어 오히려 본절을 능가한다.